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한다는 부담 : 하나님께 붙어 있는데 목표를 두라
농부존스는 포도원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아차렸다. 나무들이 열매는 안 맺고 신음만 하는 것이다. 잎이 시들고 덩굴이 축 늘어져 있었다. 옆에 있던 로건베리가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농부는 잠시 귀를 기울이고는 포도를 키우는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포도나무와 대화를 나누기로 한 것이다. 주인과 포도나무사이의 대화에는 나름의 절차가 있다. 농부는 줄지어 늘어선 포도나무들 가운데 의자를 가져다 놓고는 밀짚모자를 벗고 앉아서 말했다. “애들아, 왜 이렇게 축 늘어진거지? 이렇게 우울해 할 줄은 몰랐는데?처음에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 가느다란 가지하나가 입을 열었다. “더는 못하겠어요!
아무리 힘을 주어도 포도가 맺히지 않아요.” 다른 가지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잎사귀들이 춤을 추었다.“건포도 한 알도 맺지
못하겠는걸요.” 가지들 중 하나가 말했다.“저를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라고 불러주세요.”다른 가지가 외쳤다. “제가 어리석은 말을 하더라도 용서하세요.” 또 다른 가지가 말했다.“하지만 저는 너무 힘들어요. 어찌나 피곤한지 절로 비명이 나올 지경이에요. 농부 존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들이 불행한 것도 당연해. 자신의 본문을 잊고 너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애쓰니 말이야. 포도를 맺으려고 애쓰는 것을 그만두려무나. 너희가 할 일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거야. 포도나무에 꼭 붙어 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면 놀랄걸.” 대화가 너무 억지스러운가? 농부와 포도나무 사이의 대화라면 이상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와 그 자녀들 사이의 대화라면 어떨까? 하나님은 한꺼번에 무수한 신음소리를 들으실게 분명하다.....
우리 중에는 ‘열매 맺지 못하고 염려로 가득한’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물론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바울의 권면을 따르고 싶어한다.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지 옳은 것과, 무엇이든지 순결한 것과, 무엇이든지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명예로운 것과, 또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것을, 이 모든 것을 여러분은 골똘히 생각하십시오”(빌4:8)
우리는 엄숙한 얼굴로 다짐한다. ‘오늘 나는 오직 참되고, 경건하고, 올바르고...칭찬할 만한 것들만 생각할 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말이지.’ 그러나 이런 생각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모든 생각이 참되고,경건하고, 올바르고, 순결하고, 사랑스럽고, 명예롭고, 덕이 되고, 칭찬 할 만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과연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목표를 그리스도께 붙어있는 데 두라.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그리스도는 참되고, 경건하고, 올바르고, 순결하고, 사랑스럽고, 명예롭고,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분이 아니신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예수님의 비유는 간단하다. 하나님은 포도원 주인과 같다. 그분은 포도나무에서 최상의 것을 끌어내고자 하신다. 하나님은 양분을 공급하고, 가지를 치고, 복을 주신다. 하나님의 목표는 한가지다. 바로 ‘열매를 맺게 하려면 어떻게 할 것 인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심하게 포도원을 돌보는 유능한 농부이시다.
그리고 예수님은 포도나무 역할을 하신다. 포도를 재배한적 없는 우리는 포도나무와 가지를 잘 구분하지 못할 수 있다. 포도나무를 보려면 가느다랗고 구불구불한 가지에서 시선을 아래로 옳겨 두꺼운 부분을 보면된다.
포도나무는 뿌리와 밑동이다. 그것은 흙속의 양분을 가지에 전달한다.예수님은 자신이 참된 생명의 근원이라는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만약 우리삶에 무언가 좋은게 유입된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통해 유입된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가지다. 우리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갈5:22)의 열매를 맺는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붙어 있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하나님 아버지는 포도원을 돌보시고 예수님은 가지에 양분을 공급하신다.
우리는 그 양분을 흡수하여 열매를 맺는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사랑과 은혜와 평화의 열매로 가득한 바구니를 보고 놀라 포도원 주인이 누구인지 묻지 않을 수 없고, 그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신다. 이런 이유에서 열매맺는 것은 하나님께 중요하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중요하다! 당신은 불안해 하는 것에 지쳤다. 더는 불면의 밤을 보내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염려하고 싶지 않다. 성령의 열매를 맺고 싶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가? 아니다. 예수님께 더 꼭 붙어 있으면 된다. 우리의 과제는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굳건한 믿음을 간직하는 것이다. 열매를 맺고 근심 없이 사는 비결은 행위보다는 존재 양식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이 점을 놓칠까 봐 예수님은 ‘거하다’라는 단어를 총 일곱 개의 성경 구절에서 아홉 번 사용하셨다. 나의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15:4-10) 우리의 목표 (유일한 목표)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 다.그리스도는 길가의 공원이나 호텔방이 아니라 우리의 항구적인 주소지시다.그리스도는 우리의 집이고 피난처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진정한 우리 자신이 되는 자유를 누린다. 그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갈 길을 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과 그분의 방식을 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쉼을 얻고 양분을 공급받는다. 그리스도 은혜의 지붕은 우리를 죄책감의 폭풍으로부터 보호해 주고,그분의 섭리의 벽은 우리를 파괴적인 바람으로부터 지켜준다. 그분의 벽난로는 인생의 쓸쓸한
겨울에 우리를 따듯하게 해준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집에 머물며 결코 그곳 을 떠나지 않는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이점을 놓치고는 한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 시키고”그리스도를 위해 무엇 인가를 하고“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기 위해“노력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생활의 부산물일 뿐이다. 우리의 목표는 열매 맺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것이다.... 이런 장면을 떠올리면 도움이 될 것이다. 아버지가 네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지날 때 그는 아들의 손을 잡고 “내 손을 꼭 잡으렴.”하고 말한다. 그는 지도를 외우라거나 차가 오면 재빨리 피하라거나 집에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는지 보자고 말하지 않는다. 좋은 아버지는 아들에게손을 꼭 잡고 있을 것‘ 한 가지만 요구한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렇게 하신다. 그러므로 해야 할 일들의 목록으로 스스로에게 짐을 지우지 말라. 그 일들을 못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염려를 키우지 말라. 당신의 목표는 미래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게 아니라, 결코 당신의 손을 놓지 않으실 하나님 손을 꼭 잡는 것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맥스 루케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