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설교의 주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말씀의 설교 중에 복음의 장대위에 든다. 그리스도 예수가 매일 들려야 한다. 그 목적을 위해 그가 세상에 오셨다.“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진리의 설교로 그를 들 수 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할 천 가지 다른 것들과 반대로, 나는 내 사역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예수를 전파하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스도가 가장 두드러져야 한다. 지옥이나 영벌이 아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자비뿐 아니라 하나님의 두려움도 설교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천둥도 설교해야 한다. 만일 사람이 범죄 하면, 그것으로 인해 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해줘야 한다. 만일 그들이 범죄 하는데 “하나님이 와서 보복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하기를 부끄러워하는 파수꾼이 있다면 화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 있는 모든 위협을 우리가 악하게 억누른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엄중한 직분에 불충실한 것이다.... 때로는 준엄하게 영원한 진노의
신성한 신비를 설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훨씬 더 자주 설교할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다. 위협보다 구애로 더 많은 영혼들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설교하고 싶어 하는 것은 지옥이 아니라 그리스도다.
교리보다 그리스도
다시 말하거니와, 설교자의 주제는 단지 교리가 아니라, 반대로 그리스도 예수여야 한다. 나의 좋은 형제 설교자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항상 교리만 설교한다... 형제들이여, 어떤 사람들은 교리를 설교하지만, 하나님의 교회에 유익하기보다 해가 되는 것 같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모든 영들을 분별하는 심판관이라도 되는 듯이 한다. 그들만이 전부라는 듯이 말이다. 그들이 죽으면 지혜도 사라진다는 듯이 말이다. 만일 그들이 사라진다면 진리의 기준이 사라진다는 듯이 말이다...형제들이여, 우리는 예정설보다 그리스도를 설교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셨다는 것을 좋아하고, 예정을 좋아하고, 하나님 말씀이 위대한 교리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설교하기보다 그리스도를 설교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교리의 머리 위에 두고자 한다. 우리는 교리를 그리스도가 앉으실 보좌로 만들고자 한다. 우리는 감히 그리스도를 제일 밑바닥에 두고, 그의 말씀의 교리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억누르거나 짓누르려 하지 않는다.
도덕보다 그리스도
다시 말하거니와 설교자는 단지 도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설교해야 한다. 많은 런던의 설교자들이 성경 말고 셰익스피어의 글로도 설교하는 것이 가능한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도덕적 격언 뿐 이기 때문이다. 소위 선량한 설교자는 중생을 언급할 생각을 안 한다. 그저 가끔 도덕적 헌신에 대해 얘기한다. 그러나 그는 은혜로 인내하는 것에 대해 얘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잘 살아가자는 것이 그가 항상 부르짖는 바이다. 그는 “믿고 구원 받으라”고 설교 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가 항상 권면하는 것은 “선량한 그리스도인들이여, 기도문을 암송하고, 처신을 잘하여 천국에 들어가십시오.”라는 것이다. 그의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 없는 삶, 비록
우리가 좀 부족할 테지만, 우리의 생활을 조금씩 고쳐나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요3:3)이라는 옛 구절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술주정꾼이 되고 싶다면, 만일 당신이 부정직해지고 싶다면, 만일 당신이 세상의 모든 악을 배우고 싶다면, 가서 도덕적 설교자의 설교를 들으라. 그 양반들은 사람들을 개혁하고 도덕적으로 만들려고 하다가 사람들을 도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사람들이다. 성 래빙턴 주교의 증언을 들어보라. “우리는 오랫동안 도덕적 설교로 나라를 개혁하려 해왔다. 효과는? 전무하다. 오히려 우리는 애써 설교하여 사람들을 노골적 불신실에 빠뜨리고 있다.
우리는 목소리를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설교해야 한다. 다른 아무것도 아닌 오직 복음만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학식(지식)보다 그리스도
한 가지 더 언급할 것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설교자가 학식을 설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와 반대로 그리스도를 설교해야 한다. 물론 학식에 반하는 설교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이 배울수록 설교자에게 좋다. 설교자가 그것을 은혜로 잘 사용한다면 청중에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설교자들은 너무 많이 배워서,책을 읽다가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그것을 적어둔다. 그래서 다음 주일 아침 설교에 그 단어를 사용하여 영광을 받으려고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어떤 유별난 독일어 표현을 발견하면,별 의미가 없는 것이더라도 언뜻 보기에 멋져 보이면, 그것을
언급하고 복음은 부차적인 것으로 만든다. 당신은 설교자가 주중에 성경 말고 다른 아무 것도 읽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그러면 당신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듣게 될 테니까. 그러나 그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의 말을 사람들이 다 이해한다면, 그는 자신이 위대한 설교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쉬운 언어로 사람들에게 말해야 한다. 더 나아가,우리는 들리신 그리스도를,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가져야 하며,
무의미한 미사여구를 갖지 말아야 하고, 일부러 유창해 보이게 웅변 식으로 꾸며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를 뜨겁게 설교하면 그가 모든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이끄실 것이다...
휫 필드의 무엇이 청중을 그렇게 매료시켰는가? 단지 단순한 복음을 열정적으로 웅변하여 모든 것을 몰입시켰던 것은 아닌가? 오, 그의 웅변이 아니라 복음이 사람들을 이끌었다. 진리가 있으면 항상 인기를 끈다.
만일 누군가 말하기를, 진리를 설교하면 교회가 빌 것이라고 한다면,나는 이렇게 말하겠다.“제가 보기엔 당신은 그것을 증명할 수 없을 것 입니다.”그리스도가 진리를 전파하시자, 평범한 사람들이 그의 말을 기쁘게 들었고,
수많은 무리가 그의 말을 경청하려고 모여들었다.
나의 좋은 설교자 형제여, 교회가 비었는가? 교회가 채워지기를 바라는가? 내가 좋은 방법을 알려줄 테니, 그것을 따르면 필시 당신의 교회가 꽉 찰 것이다.
당신의 모든 설교 원고를 태워버려라 그것이 첫 번째다, 당신의 공책을 버려라.
그것이 두 번째다. 성경을 읽고 나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언어로 설교하라. 그리고 모든 라틴어 중심 영어를 포기하라. 그 대신 당신의 마음에 느낀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성령께 당신의 마음을 열정으로 불타오르게 해달라고 하라.그리고 나서 가서 사람들에게 말하라. 형제처럼 그들에게 말하라.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되라. 당신이 느낀 것, 당신이 아는 것을 그들에게 말하라. 밝은 표정으로 진심으로 말하라. 그러면 나의 친구여, 당신이 누구든 교인을 얻을 것이다... 나의 친애하는 친구여, 중요한 것은 설교스타일이 아니다.사람들은 때로
다른 성공적인 설교자를 흉내낸다. 그러나 최악의 설교자는 다른 설교자를 기준으 로 하여 흉내내는 설교자다.
자연스럽게 설교하라. 당신이 진리라고 느끼는 것을 전심으로 설교하라. 그러면 영혼을 감동시키는 옛 복음의 메시지가 큰 회중을 모을 것이다. 「찰스 스펄전의 위대한 설교 예수」찰스스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