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일에 더욱 힘쓰라 The Work of The Lord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6)
본 장의 목적은 이중적이다. 하나는 오용을 책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고린도전서 15:58 본문 말씀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 경망스러운 시대의 부주의한 성급함 때문에, 적잖은 사람들이 “주의 일에 힘쓰라”는 말씀을 마치 “주를 위해 힘쓰라”라는 말씀처럼 이해하고, “기독교적 섬김”이라는 것으로 양식화하는 구호로 활용해왔다. 이 대 부분은 아주 비성경적이다. 육의 활력이 종교활동의 형식으로 분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5:58에서 “주의 일”의 정확한 의미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5:58의 “주의 일”이라는 표현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조사해볼 실질적인 필요가 있다. 즉각적으로 분명해지는 것은, 오늘날 이 어구에 대한 대중적인 이해가 철저하게 부당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이 구절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문법적으로, “주의 일”은 주님께서 수행하는 일을 가리키든지 주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일을 가리키든지 이다. 주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두 번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라는 질문을 할 때(요6:28),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라는 취지라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대답하셨다(요6:29)즉, 하나님께께서 명령하신 계명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며(요일3:23),하나님께 합당한 것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전(全)포괄적 사역은 무엇인가?라는 바로 이 질문을 할 것이다. 이에 대한 요약된 답변이 고린도전서15:58에 있다. 성도들이 항상 힘을 기울여야 하는 “주의 일”은 그리스도인의 의무 전체를 전반적으로 가리키는 명칭이다. “여호와의 도”라는 표현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밝힌 행동방침을 가리킨다. 따라서 “주의 일”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규정한 과업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의 의무이행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우리의 참여를 염두에 두고 여기에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우리에게 부과된 특수한 의무 즉, 죄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유혹에 저항해야 한다는,어린양의 피로 사탄을 이겨야 한다는, 거룩의 열매를 그리스도께 맺어야 한다는, 의무이다. 그러나 이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했다는 확신에 “견고”해야만 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감사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양보다는 질. 행위의 다양성보다는 점진적 개선이라는-“참된 경건을 계속적으로 진전 시킨다”는 (메튜 헨리)-관념을 전달한다. 이것을 탁월하게 표출한 것이 ‘현재의 진보 및 성취에 안주하지 말라, 새로운 날을 맞이할 때마다 너희의 의무를 그 전날보다 더 잘 이행하려고 노력하라’라는 사상이다.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과 거룩케 되는 것이라는 평생에 걸친 이 과업을 “주의 일”이라고 칭한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과하신 과업이기 때문이며, 오직 주님의 힘으로만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며, 주님 보시기에 특별히 기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의무는, 오직 믿음이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맺고 있는 연합을 파악하고 이에 따라 감사의 마음으로 행동할 때만 올바른 정신으로 이행 할 수 있다. 이러한 깨달음이 없이는 복음적 거룩은 켤코 존재할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사망의 “쏘는 것”을 제거했고 율법에서 “죄의 권능”을 박탈했다고 마음이 실제로 확신할 때까지는복음적 순종은 존재할 수 없다. 오직 이런 때에만, 신자는 하나님을 새로운 정신으로 즉, 두려움 때문이거나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사랑의 감사함으로 섬길 수 있다. 오직 이런 때에만 신자는 주님 안에서 정의를 얻게 해줄 의로움을 확보하는 것처럼 주님 안에서자신의 행함과 전쟁을 위한 “힘”을 갖는 다는 사실을 참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사45:22)
따라서 본문구절의 첫 단어 “그러므로”는 문맥에서 열거된 헤아릴 수 없는 복락들에 수반되는 책무를 진술하는 어떤 결론을 도출한다. 이 뿐 만 아니라, 이 책무의 실행-위대한 특권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실행-을 위한 원동력을 제공해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15:3),“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고”(20절),우리는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43절)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을 것”이기 때문에(49절),우리의 감사를 실천적 경건의 삶으로 표현하자.
이 의무를 실행하도록 영감을 주는 두 번째 동기는 고린도전서15:58의 종결부인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 줄을 앎이니라.”라는 말씀에 담겨 있다. 그리스도는 어떤 누구에게도 빚을 지지 않으실 것이다.
감사의 모든 신실한 노력- 그 실행에 아무리 결함이 있더라도-을 그리스도께서 귀중하게 여겨주시고 보상해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신다(히6:10).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증진하는 진정한 노력은 하나님의 환영을 받고 금생에서 양심의 평강과 마음의 기쁨을 낳고 내생에서 하나님의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충분히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 큰 상을 받는다. 이것이 모세로 하여금 큰 것을 부인하도록 기운을 복돋아 준 동기였다(히11:24-26).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6)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에서 “수고” 라는 단어는 “일”이라는 단어보다 더 강력하다. 피곤할 지경까지 기울인 노력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주 안에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및 그리스도를 의존해서’라는 뜻이다. 이러한 수고는 힘을 허비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이 갖춰야 할 모습이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욕망을 죽이고 자신의 은사를 계발하려는 노력은 전적으로 무익한 것처럼 보인다. 죄에 저항하고 거룩의 열매를 맺고자 하는 최선의 노력은 전적으로 실패라고 느낀다.이것은 보이는 것과 느껴지는 것에 의거해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 행위에 대해 마음을 살피고 그 진정한 의지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은 우리와 다르게 생각 하신다.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너희가 알고 있다는 이런 확신은 믿음의 분량에 정확하게 비례해서 우리의 것이다.
보상을 받고자 하는 소망에 대한 자신이 크면 클수록 죄를 죽이고 거룩을 실천하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은 그만큼 더 단호해질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신 그 “수고”만이“헛되지 않은”수고다. 「실천하는 믿음 」아더핑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