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물을 넘어서는 용기
우리가 이미 확인했듯이,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아가려는 욕구가 인류 영혼의 깊은 곳에 잠재해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이런 욕구가 그분께 나아가는 길에 놓여 있는 장애물들을 극복하기란 역부족이다. 이런 장애물에는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주된 것은 인간의 ‘속량 받지 못한 본성’이다.
인간 영혼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예배란 주변 세상에 영향을 받지 않고 가장 순수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단순한 감정에서 나오는 예배보다 더 깊은 예배이다. 불신자에게는 이런 예배가 불가능하다. 죄의 본성은 하나님의 흠 없는 본성의 벽에 막혀 좌절하기 때문에 그분이 아닌 다른 것들에서 위로를 찾는다. 죄의 본성과 하나님의 본성은 서로 양립 할 수 없다. 이것은 그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멀어졌기 때문에 생긴 실제적 결과이다.
낙심하지 말고 전진하라
심지어 신자도 그의 하나님 찾기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경험한다. 그분의 존전으로 가는 길에 놓인 이런 장애물을 극복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최대 과제이다. 인간의 영혼의 원수는 우리가 그 길을 가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온 힘을 다해 방해 공작을 편다. 대개의 경우, 이 원수는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영적 순례자를 낙심에 빠뜨리는 일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사랑 받는 자 요한’은 이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4:4)라고 말한다. 우리를 방해하는 세력이 실제로 존재하긴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만큼 강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원수의 간계를 다 이겨낼 수 있다. 그가 우리의 길에 만들어 놓은 장애물이 무엇이든지 다 극복할 수 있다.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것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일들에 관심을 쏟는 것이다. 이렇게 관심을 쏟겠다는 우리의 의지는 적극적이고 집요하고 의도적인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길에 이런저런 어려움이 놓여 있다 할지라도 말이다.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는 것을 복잡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낙심하여 포기하게 된다. 그분의 존전에 이르는 영적 여행은 연예오락과 육신의 속된 쾌락에 탐닉하는 자들이나 게으른 자들을 위한 여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말해준다. 그분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이 아무 방해 없이 쉽게 주어지는 것이라면 우리에게 동기 유발이 되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가치가 없다. 하나님의 존전에 이르는 것! 이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분께 나아가는 길에 놓인 온갖 장애물을 극복하는 수고는 헛수고가 아니다....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의 체험은 그것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을 극복해야 하는 선한 싸움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그분의 임재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앞에 놓인 주요 장애물들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 것을 똑바로 바라보면 장애물은 작게 보이는 법이다.... 영적인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깊이 느낀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는 영적인 일들에 대한 관심과 감동을 노래하는 찬송가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웨슬리 형제의 찬송가들을 부르는 우리의 마음에는 진심이 별로 담겨 있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찬송을 불러야 한다. 영적인 일들에 더욱 뜨거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뜨거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더욱 집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읽어야 하고, 들어야 하고, 찾아야 한다. 조사해보고 또 조사해 보아야한다. 아주 진지하게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면서 재미의 추구 경박함 그리고 변덕스러움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무엇이든지 재미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오늘날 모든 재앙의 뿌리이다. 재미없는 것은 이제 인기가 없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두지만, 하나님께서 그분을 떠나 어두움 가운데 방황하는 인류를 내려다보고 계시다는 사실은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그분이 그분의 거룩한 아들을 보내 동정녀에게서 나게 하신 것은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그분의 아들이 박해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성령께서 오신 사건은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악한 자들이 심판받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재미의 추구, 경박함 그리고 변덕스러움이 끼어들여지가 없다. 우리도 우리에게 전해진 메시지에 더욱 관심을 갖고 진지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의 중요한 책무는 사람들이 영적인 일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아주 많은 목회자와 설교자는 이런 책무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하나님의 일에 대한 기대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기대하지 않으니 이루어지는 것도 전혀 없다. 그러나 성령께서 주시는 부담감을 마음에 느끼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분의 일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기 원한다. 그리스도의 교훈에 깊은 관심을 쏟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경의 기록이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현대문화가 가져온 재앙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모든 그리스도인은 나름대로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지금은 하나님의 깊은 일을 아는 것이 힘든 시대이다. 현대의 기독교가 세상에 정신이 팔려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영적 삶의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힘들게 만든다. 워낙 많은 일들이 우리의 주의를 빼앗아가기 때문에
마음을 굳게 먹지 않으면 세상에 정신 팔려 허송세월하게 된다.내가 볼 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한 가장 위험한 상황은‘양심의 소작(燒灼:약품이나 전기로 병의 조직을 태우는 외과적 치료법)이라는 것 때문에 생긴다.
이것은 사람으로 주변 세상에 무감각하게 만든다. 이런 무감각에 빠진 사람은 도덕적 문제들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도덕적 무감각은 ’느끼지 못하는 것‘인데, 이들은 도덕적 문제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역설은, 사람은 때로 자기 느낌의 부재로 인하여 괴로워하면서도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조차도 이 시대의 부도덕에 대해 분개하지 않는다.
이런 위험한 상태를 초래한 원인은 죄의 행위로 말미암아 생긴 ‘반(半)마비상태 이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자기의 양심을 어느 정도 마비시키게 된다.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양심을 소작하는 것이다. 신체의 어떤 부분을 소작하면 처음에는 그곳이 아프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그곳의 느낌이 사라진다. 소작한 부분은
피부가 두꺼워져 딱딱한 껍질처럼 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또 생각 해보아야 할 것은 영적 무기력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를 듣고서도 부자연스런 영적 나른함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영적 나른함에 빠지는 사람들도 이 시대의 현실적 위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지혜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우리에게 거의 또는 전혀 유익이 없는 것들에는 관심을 쏟으면서, 지극히 중요하고 필요한 것들에는 무관심하여 그저‘통과!’라고 말한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가지고 장난할 때에는 혼신의 힘을 다 바친다. 그러므로 얼른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물질과 쾌락의 추구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 도덕적 무감각과 영적무기력은 우리가 영적건강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두 가지 주요 재양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 걸음걸음마다 방해를 받게 마련이다. 이 두 가지를 고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진정으로 회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것이다.
경계선을 넘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회는 사람들이 모두 닮은 꼴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용의 주도하게 작당한 것 같다.. 우리가 경찰서에 끌려가지 않을 정도로 선하게 살고, 사람들의 양심에 부담감을 주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악하게 살라고 권하는 것이 사회의 일반적인 분위기이다. 그러나 더 차원 높은 삶으로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내 귀에 들린다. 히브리서는 경계선에서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건너가라! 네가 용기를 내면 할 수 있으니 건너가라!”라고 힘찬 목소리로 촉구하는 살아 있는 책이다. 그리고“내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걱정마라. 너는 나를 믿고 순종 할 수 있다”라고 격려하는 책이다.
온갖 방해세력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스런 빛으로 들어가면 그동안의 모든 고생은 보상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굶주린 영혼을 먹이신다」A.W토저